인간은 예외자가 아닙니다
[타임즈코리아] 사람들은 존재론하면 형이상학이 생각날 것입니다. 존재론은 일반 형이상학에서 다루는 분야입니다. 모든 존재자가 존재자로서 공통적으로 지니는 것을 말합니다. 이 구분은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기원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지어보더라도 브라이언트의 책 제목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인간 주체가 비인간 존재자들에 대해서 혹은 세계에 대해서 어떻게 경험하는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인간 주체의 인식론적 태도로부터 그들이 세계를 어떻게 경험하는가 하는 타자적 응시 혹은 관점을 변경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이와 같은 에포케는 인간의 목표와 다른 존재자들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구분함으로써 가능해집니다. 나아가 이것은 보고스트(Bogost)의 “존재의 위계는 전혀 없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자신이 평평한 존재론, 아나키즘적인 존재론을 지향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알게 해줍니다.
저자에 의하면 공간과 시간의 토폴로지는 권력의 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이것을 ‘중력장’이라는 말로 치환합니다. ‘권력’이라는 뉘앙스가 지극히 인간중심적이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사회적 관계망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우리가 흔히 간과할 수 있는 허리케인과도 같은 기계가 실재적 행위자라는 인식론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반인간중심주의적 발상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존재자는 사실 주체가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객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밝은 객체’에서 회집체에 거의 중력도 방사하지 못하는 장애인이나 노숙자와 같은 ‘희미한 객체’, 자본주의와 같은 ‘블랙홀 객체’, 자연재난이나 인터넷 같은 ‘불량 객체’ 등 다양한 객체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저자는 자신의 ‘존재지도학’을 달리 ‘지리철학’으로 명명합니다. 이는 평평한 존재론, 수평적 존재론, 그리고 내재적 존재론으로서 수직적, 위계적 존재론을 거부하기 위함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모호한 거대 용어로 인한 추상작용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을 취하기 위함입니다.
자본주의, 존재신학, 사회, 인종주의, 가부장제라는 개념조차도 애매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의심의 해석학을 통하여 해체하고 새로운 중력장을 검토하려는 저자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그는 사람, 생태 등을 억압하는 중력장에 대해 비판적으로 뜯어보고 인간 주체에서 벗어나 사회적 회집체를 자연과 구분되는 것을 반성적으로 고찰하려고 합니다.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의 경계를 폐기하고 구체적인 것에 대한 호소를 요구합니다. 기표와 기호의 추상적 관념이 다양성과 개체성을 저버리는 유사성에 매몰되지 않도록 “세계 속 기계들과 더불어 기계들 사이의 관계들에 주목하라”는 주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체적인 세계에 개입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자신의 역능을 박탈당한 기계가 되지 말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맨 마지막 단락에서 저자가 밝힌 것처럼, 기후변화로 인한 위험과 위협은 결국 ‘인간 예외주의’라는 편견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논조가 책의 방향성을 다 설명한 듯합니다. 이를 위해서 자신이 존재지도학을 제공했노라고 하면서 끝을 맺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 책은 난해합니다만 매우 흥미로운 책입니다. 그리고 읽어나갈수록 매력이 있으며 흥분되는 책입니다. 만일 어떠한 독자가 브라이언트의 책을 읽고자 한다면,《존재의 지도》를 정치(精緻)하게 독해한 후《객체적 민주주의》를 손에 든다면 좀 더 명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세계를 관찰하는 데 유물론적 사유에 대한 새로운 해석학을 제공해 준 브라이언트의 탁견과 그 심대한 노력에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그의 문헌 소화력과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는 논리적인 힘은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 곧 사회, 자연, 인간, 물질 등의 기계로 이루어진 회집체를 비판적인 안목으로 새롭게 읽어내고자 하는 독자라면 꼭 읽어보기를 바랍니다. 시의적절한 책을 우리나라에 소개해 준 훌륭한 번역자와 갈무리 출판사에 감사합니다.
김대식
숭실대학교 철학과에서 강의를 하면서 절대자유, 평평한 존재론을 추구하는〈함석헌평화연구소〉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