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8-07(금)

천안살림교회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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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2.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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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인권을 옹호하는 교회, 지역사회에 필요한 교회, 민주적인 교회' 
 
20120308192639_3516.jpg▲ 천안살림교회 최형묵 담임목사
최대식: 천안살림교회에 대하여 소개해 주세요.

최형묵:
새 천년이 시작된 2000년 첫 주일에 시작되었습니다. 지역에 좀 더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대안교회’를 세우고자 하였는데, 그 창립의 정신은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교회를 지향합니다.]
▶영적 공동체
교회는 깊은 영적 체험을 추구함과 아울러 진정한 심신의 안식을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선교하는 교회
교회는 끊임없이 세상을 향해 의로운 하나님의 일을 펼쳐나가야 합니다.
▶다른 교회들과 더불어 힘을 모으는 교회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할 때 교만하고 닫힌 교회가 되기 쉽습니다.
다른 교회들, 여러 선한 사람들과 함께 힘을 모아 선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 겸손하고 열린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생명과 인권을 옹호하는 교회
하나님께서는 땅 위의 모든 생명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이를 위해 교회는 돕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지역사회에 필요한 교회
평화롭게 더불어 사는 지역사회를 위하여 교회는 항상 열린 자세로 헌신해야 합니다. 
▶민주적인 교회
교회에서 목회자의 지도력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모든 평신도가 교회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와 평신도, 남성과 여성, 어른과 어린이 사이의 불평등한 차별이 없는 민주적인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친밀한 공동체
우리는 대형교회를 지향하지 않습니다. 온 교우들이 서로 가깝게 느끼고 알 수 있는 교회를 원합니다.
200명이 넘어서면 용기 있게 새로운 교회를 세울 수 있는 자세로 나아가려 합니다.  
▶희망이 있는 교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셨습니다.
오늘 이 땅에는 그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하며 선한 일에 애쓰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이 땅의 선한 사람들과 더불어 나아가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2012년 현재 12주년을 넘겨 13년째 접어들고 있는데, 지난 2010년 10주년에 당회를 조직하는 등 안정화(재정자립, 고른 연령대 등)되어가고 있습니다. 규모로는 여전히 영세하지만(재적인원 100여명, 출석인원 60여명), 창립정신에 따라 활력 있는 신앙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의 구성은, 대개 신앙경력이 오래 된 분들이 많은데, 기존교회에서 상처가 있거나 기존교회에 실망하여 다른 대안을 찾아 나선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아마도 천안살림교회가 아니었더라면 교회생활을 포기할 뻔 했던 분들도 상당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교회생활을 하지 않다가 천안살림교회에 나오신 분들의 경우입니다. 대개 인터넷을 통해 사전에 교회를 충분히 ‘탐색’ ‘연구’한 끝에 천안살림교회에 나와 정착하는 경향입니다.

물론 초신자들도 있습니다. 초신자의 경우는 대개 배우자를 따라 나온 경우로, 기존교회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갖고 있지만 천안살림교회에 와 본 후 ‘교회가 이만하면 다닐 수 있다’는 마음으로 교인이 된 경우입니다.
꾸준히 새로운 교인들이 늘지만, 규모가 ‘일취월장’하지 않은 까닭은, 우선 비교적 젊은 층이 많고, 직장관계로 이사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천안은 인구유동이 심한 도시입니다. 그러나 덕분에 전국에 흩어진 교우들의 인적 네트워크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20120308194501_8763.jpg▲ 창립 12주년 기념 행사

최대식:최형묵 목사님에 대해여 소개해주세요?

최형묵:
신학을 공부했지만 처음부터 목회에 뜻을 두었던 것은 아니었고 그보다는 신학연구 활동에 종사해 왔습니다. 연세대학교 신학과와 한신대학교 대학원을 마친 후 민중신학자 안병무 선생께서 설립한 한국신학연구소에서 오랫동안 연구원으로, 그리고 계간 신학전문지『신학사상』 편집장으로 일했습니다. 현재 천안에 살게 된 사연도 한국신학연구소가 서울에서 천안 병천(아우내)으로 이전하게 된 데 있습니다. 민중신학을 공부하는 연구자로서 스스로의 몫을 설정하고 있었기에 목회 계획은 없었지만, 뜻하지 않게 연구소를 그만 두게 되었고 그 바람에 몸을 담은 곳이 교회였습니다. 당시로서는 목회를 한시적으로 생각했는데, 3년여 동안 부교역자로서의 목회 경험 덕분에 교회현장 목회에 대해 적극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고 결국 천안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성장하고 따라서 그 영향력을 확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배타성과 폐쇄성 때문에 사회적 공신력을 상실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 하나를 더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깊은 회의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새로운 교회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되었고, 매우 다행스럽게도 지역에 뜻을 같이하는 신앙의 동지들이 있었습니다. 보다 더 진취적이고 보다 더 개방적인 교회를 세워 지역 내 희망의 싹을 키우기 위해 달려온 것이 이제 12년이 지났습니다. 처음부터 그런 개념을 제시한 것은 아니었지만, 요즘 세칭 ‘대안교회’라 불리는 교회들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아가고 있습니다. ‘대안학교’가 그 뜻대로 교육의 대안을 제시해주기를 바라듯, ‘대안교회’ 역시 한국교회의 희망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원래 예정에 없던 목회자로서 길을 걷게 되었지만, 처음부터 뜻을 두어 온 신학 연구자로서 몫 또한 동시에 감당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젊은 민중 신학자들의 모임을 모체로 해 만든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를 중심으로 신학연구 활동과 강의(한신대학교) 등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집필활동(『사회변혁운동과 기독교신학』;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 손이 없기 때문이다 - 민중 신학과 정치경제』; 『해방공동체』; 『함께 읽는 구약성서』; 『뒤집어보는 성서인물』;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미국복음주의를 모방한 한국 기독교 보수주의, 그 역사와 정치적 욕망』(2007년도 문화관광부 교양도서 추천) ; [역서] 『예수 시대의 민중운동』; 『무함마드를 따라서 - 21세기에 이슬람 다시 보기』 등)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교회 현장에서도 건강한 신학과 목회가 행복하게 만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또한 목회자는 자기 교회만의 테두리 안에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에 교단 및 교회연합활동(기장 총회 교회와 사회 위원, NCC 신앙과 직제 위원)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사회적 활동(계간 『진보평론』편집위원)과 지역 내에서의 활동(미래를 여는 아이들 공동대표, 푸른 천안 21추진협의회 위원)에도 꾸준히 참여해왔습니다.

최대식: 최형묵 목사님께서는 그야말로 이론과 실천의 통일, 신학과 목회현장의 합일, 신학자이자 동시에 목회자로서 몫을 감당하고자 하며 살아가고 계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최형묵 목사님께서는 그야말로 이론과 실천의 통일, 신학과 목회현장의 합일, 신학자이자 동시에 목회자로서 몫을 감당하고자 하며 살아가고 계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20120308193326_9132.jpg▲ 최형묵 목사 가족

최대식: ‘다른 교회들과 더불어 힘을 모으는 교회’이라는 차원에서 한국교회들에게 제안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최형묵:
한국교회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말을 해 왔는데..., 특별히 질문하신 초점과 관련해서 말하면,
한국교회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가 개교회주입니다. 그것은 개별교회별로 완벽하게 자족적인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의 조직으로서 자기완결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하나의 교회가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의 교회가 모든 것을 다 갖추고 뭔가 기여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이 교회의 대형화를 선망하는 동기가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개별 교회가 아니라, 지역의 교회들, 그리고 전국의 교회들, 세계의 교회들이 한 몸을 이루고 있고, 그 안에서 개별 교회들은 지체를 이루고 있다는 신학적 인식이 새삼 절실합니다. 그렇게 인식하면 개별교회로서는 혼자 할 수 없는 일도 서로 협력해서 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가 개방적이 될 수 있고, 또한 교회들 간에 공존의 방법도 찾아질 수 없습니다. 자족적인 대형교회가 선망하는 모델이 되는 경향이 지배적인 풍토에서, 교회 간 공존의 길은 찾아질 수 없습니다. 공정한 거래를 위한 독과점금지가 상도에서 상식입니다. 현재 한국교회들 사이에서는 상거래에서의 상식도 통하지 않고 있는 개탄스러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20120308183136_4242.jpg▲ 생명과 인권을 옹호하는 교회

최대식: ‘생명과 인권을 옹호하는 교회, 지역사회에 필요한 교회, 민주적인 교회’를 표방하고 계신데요, 관련하여 하시는 일들에 관하여 말씀해주세요?

최형묵:
이건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이 말 그대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러나 질문하셨으니까 답변 드리겠습니다. 생명과 인권을 옹호한다는 것은, 교회의 중심가치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교회의 중심 가치는 복음 또는 그 복음을 믿음으로써 얻는 구원 등이겠지요. 그러나 오늘의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가치들과 관련하여 그 중심 가치들을 말한다면, 그것은 생명과 인권, 또는 정의와 평화, 민주주주의 등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예수 믿고 나는 복 받는다는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사회를 보다 더 나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공공성을 구현하는 가치,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가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지역사회에 필요한 교회는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기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가 지역사회와 무관한 폐쇄적인 집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가치를 구현하는 저희 나름의 구체적인 일들은, 우선 선포와 교육 등에서 그러한 가치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그러한 가치를 구현하도록 독려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희교회 구성원들은 절대다수가 지역시민사회단체 등에 관여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YMCA, 환경운동, 교육운동, 노동운동, 사회적 기업, 그리고 기부와 여러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교회단위로 참여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지역아동센터나 지역시민단체를 지원하는 일, 장애가정을 돕는 일, 인문학강좌 개설 등 여러 활동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지향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활동을 위해서는 교회의 민주적인 의사구조가 중요합니다. 저희는 예외 없이 모든 사항을 전교인의 총의를 모으는 방식으로 결정합니다. 장로교 안에서 공동의회는 년 1회 형식적으로 여는 데 불과하지만, 저희는 매월 제직회 대신 공동의회를 열어 모든 문제를 결정합니다. 당회마저도 공동의회가 위임하는 사항을 의결할 뿐입니다. 어린 학생들이 의견을 제기하는 경우에는 공동의회에 참여시켜 자유롭게 의견을 밝힐 수 있도록 합니다. 때때로 결정과정이 더딘 경우도 있지만, 모두가 책임을 지는 구조를 형성할 수 있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방식을 추구합니다. 목사로서도 그 방식이 훨씬 편합니다. 그리고 항상 모든 결정은 결과적으로 목사의 의중과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민주적인 기풍을 형성함과 동시에 또한 교회의 새로운 문화 형성을 위해서도 노력합니다. 예컨대 식당 설거지는 남자들의 몫입니다.
이건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이 말 그대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러나 질문하셨으니까 답변 드리겠습니다. 생명과 인권을 옹호한다는 것은, 교회의 중심가치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물론 교회의 중심 가치는 복음 또는 그 복음을 믿음으로써 얻는 구원 등이겠지요. 그러나 오늘의 세계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가치들과 관련하여 그 중심 가치들을 말한다면, 그것은 생명과 인권, 또는 정의와 평화, 민주주주의 등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예수 믿고 나는 복 받는다는 믿음이 아니라 우리의 사회를 보다 더 나은 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공공성을 구현하는 가치, 모든 사람에게 유익한 가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지역사회에 필요한 교회는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기여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가 지역사회와 무관한 폐쇄적인 집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가치를 구현하는 저희 나름의 구체적인 일들은, 우선 선포와 교육 등에서 그러한 가치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구성원들이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그러한 가치를 구현하도록 독려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희교회 구성원들은 절대다수가 지역시민사회단체 등에 관여하고 활동하고 있습니다. YMCA, 환경운동, 교육운동, 노동운동, 사회적 기업, 그리고 기부와 여러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교인들이 많습니다. 교회단위로 참여하는 일들도 있습니다. 지역아동센터나 지역시민단체를 지원하는 일, 장애가정을 돕는 일, 인문학강좌 개설 등 여러 활동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러한 지향하는 가치에 부합하는 활동을 위해서는 교회의 민주적인 의사구조가 중요합니다. 저희는 예외 없이 모든 사항을 전교인의 총의를 모으는 방식으로 결정합니다. 장로교 안에서 공동의회는 년 1회 형식적으로 여는 데 불과하지만, 저희는 매월 제직회 대신 공동의회를 열어 모든 문제를 결정합니다. 당회마저도 공동의회가 위임하는 사항을 의결할 뿐입니다. 어린 학생들이 의견을 제기하는 경우에는 공동의회에 참여시켜 자유롭게 의견을 밝힐 수 있도록 합니다. 때때로 결정과정이 더딘 경우도 있지만, 모두가 책임을 지는 구조를 형성할 수 있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방식을 추구합니다. 목사로서도 그 방식이 훨씬 편합니다. 그리고 항상 모든 결정은 결과적으로 목사의 의중과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민주적인 기풍을 형성함과 동시에 또한 교회의 새로운 문화 형성을 위해서도 노력합니다. 예컨대 식당 설거지는 남자들의 몫입니다.
 
20120308194631_3736.jpg▲ 캐나다연합교회 그로스브노어파크교회 David Kim-Cragg목사와 유관순 기념관 방문

최대식: 목사님의 설교에 대하여 말씀해주세요?

최형묵
: 설교에 대해서는 간단히 말하기 어렵지만, 우선 목회자에게 설교는 가장 중요한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설교준비방식부터 말하면 매주 정해진 날 금요일 하루 종일 준비하고, 완성된 원고를 갖춥니다. 성서본문 주석을 철저히 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 말씀이 오늘의 상황 가운데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묻습니다.

내용의 전달 방식은 일방적인 해답을 던져는 방식보다는 설교를 듣는 중에 저마다 의미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최선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교우들은 우리교회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대학교’ 또는 ‘대학원’이라고도 합니다. 스스로 생각하도록 인도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현학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한 편 한 편 설득력 있는 논리를 갖추되, 그 언어는 가능한 한 쉽게 표현하려고 애를 씁니다.

교회에 고학력자가 많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고, 교우들 간에 학력의 차이도 상당히 있습니다. 정착한 교우들은 그런 설교방식에 대개 익숙해 있는 편입니다.   
최대식: 특별한 목회적 비전이 있으시다면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최형묵: 더 덧붙일 것은 없고, <우리는 이런 교회를 지향합니다>에 그 비전이 다 담겨 있습니다. 새삼 추가한다면 우리가 믿는 복음의 가치를 일상의 삶에 구현하는 교회, 그리고 그런 교인들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목회는 그런 방향에서 이뤄진다고 보면 됩니다. 

최대식: 지금까지 목회를 하시면서 많은 일들이 있으실 텐데요. 소회에 대하여 말씀해주세요?
더 덧붙일 것은 없고, <우리는 이런 교회를 지향합니다>에 그 비전이 다 담겨 있습니다. 새삼 추가한다면 우리가 믿는 복음의 가치를 일상의 삶에 구현하는 교회, 그리고 그런 교인들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목회는 그런 방향에서 이뤄진다고 보면 됩니다. 

최대식: 지금까지 목회를 하시면서 많은 일들이 있으실 텐데요. 소회에 대하여 말씀해주세요?
 
최형묵: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설교로 대신하겠습니다.

2009년 12월 27일(일) 오전 11:00 천안살림교회
제목: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본문: 이사야 42:1~4; 마태복음 18: 10~14; 고린도후서 3:1~3 
 
세월이 빠릅니다. 올 한 해가 훌쩍 지난 것도 그렇지만 지난 10년 세월도 훌쩍 지난 것만 같습니다.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말씀 준비를 하면서 한 해의 일들을 떠올려 보고 있는데, 가만 보니까 우리 교회가 시작된 지 딱 10년을 채우는 마지막 주일이기도 했습니다. 새 천년 첫 주일에 시작을 했는데, 그 새 천년 10년을 보낸 마지막 주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난 한 해를 회상하면서 말씀을 준비하려다, 방향을 바꿔 지난 10년을 돌아보는 가운데 말씀을 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 말씀을 무려 세 편이나 함께 읽었습니다. 교회의 전통을 따르면 매번 예배 때마다 세 편의 본문을 읽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말씀, 복음서의 말씀, 서신서의 말씀, 그렇게 세 편을 동시에 읽는 것이 교회의 전통입니다. 여기에 시편을 추가하여 네 편을 읽기도 하지요. 성서일과는 대개 그렇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전통을 유념하고 본문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지난 10년 동안 이 교회 강단에서 나누었던 말씀 가운데서 가장 빈도수가 높은 것이 어떤 것이었나! 살펴보았더니 바로 이사야서의 본문과 마태복음서의 본문이었습니다. 둘 다 네 차례씩이었습니다. 여기에 제 마음이 끌리는 본문을 하나 더했습니다. 고린도후서의 본문으로, 이 본문 역시 두 차례 이미 나눴던 말씀입니다. 이 말씀들은 제가 평소에 좋아하는 말씀들입니다. 그러기에 자주 나눴습니다. 그 말씀들의 의미는 저의 목회의 신학적 방향을 나타내고 동시에 우리 교회의 지향성을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년을 꽉 채우는 오늘 이 말씀들을 한꺼번에 본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는 마음으로 공의를 베푸는 주의 종에 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서의 말씀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의 말씀은 사도 바울의 사도직을 입증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르는 성도들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들을 다시 하나하나 주석적으로 그 의미를 헤아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미 그간의 말씀나누기로 그 주석적 의미를 헤아리는 것은 충분합니다. 오늘은 그저 기억하고 있는 그 의미를 환기하면서 우리 교회의 지난 10년간을 돌아보고자 할 따름입니다.
 
20120308200531_8483.jpg▲ 필리핀그리스도연합교회 서비사야스 노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 대전노회 선교협약 체결을 위해 방문한 대전노회 방문단(우측에서 세 번째가 최형묵 목사)

개인적인 회고부터 할까요? 저는 본래 교회의 목회에 뜻을 두지 않았습니다.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에 뜻을 두고 있었지요. 그래서 대학원, 그리고 군복무를 마치고 처음 본격적인 일터로 선택한 곳이 한국신학연구소였습니다. 서울에 있던 그 연구소가 여기 천안으로 내려오는 바람에 덩달아 내려와 집을 구하고 연구소가 자리 잡은 산 속에서 6년 반 정도 일했습니다. 어려운 일도 많았지만, 꿈을 키우며 내실을 다지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꿈을 함께 일궈나갈 수 없는 사단이 일어나고 말았지요. 새로 연구소 운영을 맡은 분과 연구원들 사이에 의견의 화합이 이뤄지지 않아 연구원 전원이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때 임시로 발을 내디딘 곳이 교회였습니다. 저를 품어준 교회와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천안교회 나도현 목사님이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괴로운 한 때를 보내야 했던 저로서는 너무나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부교역자라 하지만 부족한 저를 품어주셨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목회자로서 부족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성심껏 교회를 섬겼습니다. 교회에 대한 감각을 새삼 익히고 목회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썼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교회에서 아무리 좋은 목사님을 도와 일을 한다고 해도, 대등한 동역자가 아닌 보조자 역할로서 부교역자의 역할은 신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맡겨진 몫을 성실히 감당하기 위해 애썼지만, 임시로 머문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웠고, 1년, 2년 시간이 흘러가면서 제가 있어야 할 자리를 찾기에 부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년 동안 연말이 가까워지면 어디로 갈거나 하고, 먼 산을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담임목사님도 새로운 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부심하셨습니다.
 
하지만 별 신 통수 없이 이럭저럭 세월을 보내던 4년째 여름 저에게는 ‘계시’처럼 다가온 계기가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시절 다니던 서울 은진교회에서 만난이래로 제가 늘 선생님으로 존경하던 박성준 선생님께서 미국에 계시면서 전화를 해오셨는데, 그 때 몇 마디가 저에게는 계시처럼 다가왔습니다. 아마 그 때 그분께서는 미국 퀘이커의 본고장 펜들힐을 방문하고 거기서 감동을 받아 당신의 꿈을 구상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 꿈을 이야기하는데 제가 계시를 받았습니다. ‘공동체’라는 말에 마음이 선뜻 다가선 것 같습니다.

본질적인 의미에서 ‘교회’는 ‘공동체’일 수밖에 없는데도, 제가 기성 교회를 생각할 때는 그게 공동체라고 거의 생각해오지 않았습니다. 기성 교회에 공동체성이 사라졌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저런 말씀이 있었는데 그걸 다 이야기하자면 시간이 없어 줄입니다만, 아무튼 결정적으로 전혀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꿈이 교회 개척의 길을 결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로서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그야말로 꿈도 안 꿔봤던 교회를 개척한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결심을 했던 주간은 마침 집사람이 저 태백에 있는 예수원으로 기도하러 떠나 있던 때였습니다. 돌아오자마자 그 이야기를 했더니 뜻밖에도 선선히 받아줬습니다. 도통 재미없이 사는 듯 한 사람이 몇 년 만에 ‘내가 이런 일을 하고 싶다’라고 말을 하니까 그게 반가웠던 모양입니다.
 
20120308195800_4020.jpg▲ 천안살림교회 예배모습
 
그 때부터 몸과 마음이 분주해졌습니다. 그 때 천안생활 10년 만에 사실상 거의 처음으로 지역민 의식을 갖고 지역의 여러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뜻밖에도 저의 그 꿈에 호응해주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결심을 굳히고 새로운 교회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부터는 마구 떠들면서 돌아다녔더니, 저를 잘 아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말리기 시작했습니다. 담임목사님도 반대를 했고, 아주 가까운 동료 선후배 목사들은 집에 쳐들어와 꼬박 하룻밤을 세우다시피 해가며 만류를 했습니다. 목회보다는 공부할 길을 택하라는 이야기였습니다. 때마침 그럴 듯한 자리를 제안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제 결심을 돌이키지는 못했습니다. 만류를 받을수록 제 결심은 더 굳어졌고 새로운 교회에 대한 꿈은 더 선명해졌습니다. 1999년 11월말로 교회를 사임하고 그해 12월 한 달은 새로운 교회를 준비하는 일에 몰두하였습니다. 

결국 만류를 하던 모든 분들이 강력한 후원자가 되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개척자금 한 푼 없이 교회를 개척하겠다는 무모한 목사에게 여기저기서 성원을 보내 왔습니다. 제가 결혼할 때와 거의 다르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 즈음 제가 한 일은 전국의 지인들께 딱 한 장의 진솔한 편지를 보낸 게 전부였는데, 성원이 답지했습니다. 덕분에 그해 12월에 교회당도 임대를 하고 교회집기도 다 구했습니다. 정말로 공로 없이 누리는 은혜를 실감하는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2000년, 새 천년 1월 2일 첫째 주일 창립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 교회당을 구하자마자 곧바로 그 공간은 파랑
새겨울학교로 개방을 했습니다. 지금 천안지역의 여러 지역아동센터들과 그것들을 지원하는 미래를 여는 아이들의 모체가 되는 지역아동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렇게 교회 문을 열고 1월 첫 주일 창립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그 전날 밤 저는 잠을 한 숨도 못 잤습니다. 기대 반, 두려움 반 때문이지 않았겠습니까? 물론 창립예배는 성황리에 드렸습니다. 자리에 다 앉지 못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참석해 축하해 주셨고, 그 들뜬 자리에서 저는 관례를 깨고 창립예배 설교를 직접 선포했습니다. 일종의 출사표를 던지는 심정이었습니다.
 
그 때 그 설교는 지금도 홈페이지 공간에 고스란히 올려 있고, 그 내용은 우리가 지향하는 교회 상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지금 우리 교회 규약의 서문 역할을 하는 <우리 교회는 이런 교회를 지향합니다> 하는 내용으로 집약되어 있기도 합니다.
처음 시작하는 개척교회들이 거기까지는 다 잘 나가는 법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지요. 축하객들이 물러가고 자신들만 남았을 때 쓸쓸해지는 법인데, 당연히 그 다음 주부터는 조촐하게 10여명 남짓 모여서 예배를 드리게 되었지요.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이 지나니까 30명이 넘어서고 1년이 다 되니까 50명에 육박했습니다. 출석률도 요즘 같지 않고 거의 100%에 달했습니다. 그 첫해 일 년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기대 반, 두려움 반에서 기대감이 충족된 시간이었습니다. 아마도 지역사회에 열린 교회가 되고자 했던 우리의 소망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교회공간은 항상 열려 있었고 쉴 새 없이 사람들이 들락거렸습니다. 파랑새학교를 열었지요, 독거노인 밑반찬 배달로 한 주에 이틀을 자원봉사자들이 들락거렸지요, 충남장애인부모 사무실 겸 교육장으로 매일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교회의 지향 자체뿐 아니라 교회의 공간 자체도 그렇게 열려 있었기에 그 기운을 교회가 그대로 입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 딱 일 년 만에 교회공간에 문제가 생기면서 교회당을 옮겨야 했습니다. 교회공간을 활용한 기존의 프로그램은 더 이상 하기 어려웠고, 교회 구성원의 응집력도 다소 이완되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꿈을 꾸고 있었고 나름대로 애써왔지만, 신생 교회의 어려움을 절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일 년 사이에 한껏 부풀어 올랐던 목회자의 교만도 꺾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이후의 과정은 지금 교회 구성원들 상당수가 함께 경험해온 과정일 텐데, 2004년도에 다시 한 번 현재 이곳으로 교회당을 옮겨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20120308195901_8482.jpg▲ 10주년 축하예배와 재회의 시간(2010년 4월 11일 오전)

교회시작 딱 10년을 채우는 오늘, 이미 말씀드린 내용을 포함해 여러 가지 감회가 없을 수 없습니다. 제가 교회를 시작하면서 내심 생각하기를 한 10년이면 ‘교회 꼴’이 갖춰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앞서 이야기했듯이 첫해 순항하면서 3~4년 안에 가능하리라는 기대가 없었던 적도 없지 않았지만, 목회자인 저 스스로의 성향이나 여러 가지 정황을 생각할 때 사실은 호흡을 길게 잡았습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시작된 지 딱 10년이 되는 오늘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 그 기대가 맞았다는 판단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 꼴을 갖춘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단 두 명이 모이더라도 단 하루밖에 안 되었더라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고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그렇게 모이는 사람들이 교회가 아닐 턱이 없습니다. ‘교회 꼴을 갖춘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교회의 본질을 구현하는 것과 더불어 하나의 사회적인 실체로서 교회가 스스로 존립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판단에는 불가불 하나의 사회적 실체로서 교회 공동체의 규모와 그 동력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이제 우리 교회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을 갖추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직 독립적인 교회당을 갖추지도 못했는데, 무슨 소리냐고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의 뜻, 그리스도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공동체에 있지 다른 어떤 것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그 점에서 우리 교회가 그간 일궈낸 것들은 소중합니다. 굳이 교회의 외적 조건에 해당하는 것들을 지적하자면, 어쨌든 제도적 교회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교회로서 당회도 조직하게 되었고, 그간 어려운 과정이 있었지만 재정자립도 이루게 되었습니다. 점차 골고룬 연령대를 구성해가고 있는 것도 중요한 지표입니다. 그것들은 억지로 이룬 것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스스로 표방한 정체성을 결코 훼손하지 않는 가운데서도 맛보게 된 값진 열매들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들 가운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의 의미가 살아서 그 푯대 역할을 하고 있고, 그것이 우리 교회의 진정한 동력과 활력의 근거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감히 자부하건대, 우리는 부끄럽지 않은 교회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애쓰고 있는 중입니다.
 지나온 10년의 감회를 말하는 기회이니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나 예배 중 드리는 말씀이니 자제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말씀들의 의미를 다시 한 번 환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며 꺼져가는 등불도 끄지 않는 마음으로 이 땅에 공의를 이루고자 하시는 주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자 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는 것으로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신뢰하는 공동체이기를 원합니다.

그 한결같은 마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욱 값진 선물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지난 시간을 돌이키며 그 믿음을 새삼 확인하고, 그 믿음으로 앞으로 다가오는 시간을 맞이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대담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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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연세대학교 신학과 졸업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M. Div.)
한신대학교 대학원 박사(Ph. D. 기독교윤리 전공): 박사논문 “한국 경제개발과 민주주의에 대한 기독교윤리적 평가”
한국신학연구소 연구원 및 『신학사상』 편집장 역임.
현재 한국기독교장로회 천안살림교회 담임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신앙과직제위원회 부위원장,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운영위원, 계간 『진보평론』 편집위원, 한국민중신학회 총무, 한신대학교 외래교수
                        
<저술 및 편저>
『해방공동체1~5』(공저), 한울.
『함께 읽는 구약성서』(공저), 한국신학연구소.
『사회 변혁운동과 기독교 신학』, 나단.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은 그 손이 없기 때문이다-민중신학과 정치경제』, 다산글방
『뒤집어보는 성서 인물』, 한울.
『죽은 민중의 시대 안병무를 다시 본다』(공저), 삼인.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 미국 복음주의를 모방한 한국 기독교 보수주의, 그 역사와 정치적 욕망』(공저), 평사리.
『무례한 복음 - 한국 기독교의 선교, 그 문제와 대안을 성찰한다』(공저), 산책자. 
『한국 기독교와 권력의 길 - 그 내부에서 바라보며 대안을 찾는다』, 민예총문고 11, 로크미디어.
『반전의 희망, 욥 - 고통 가운데서 파멸하지 않는 삶』, 동연.
『다시 민중신학이다』(공저), 동연.
『위기의 한국교회, 진단과 대안』(공저), 동연.

<역서>
R. A. Horsley 외, 『예수시대의 민중운동』, 한국신학연구소.
J. M. Myers, 『역대기하』 국제성서주석12-2, 한국신학연구소.
J. A. Soggin, 『판관기』, 국제성서주석7, 한국신학연구소.
J. Gray, 『열왕기상ㆍ하』(공역), 국제성서주석9.10, 한국신학연구소. 
C. W. Ernst, 『무함마드를 따라서 - 21세기에 이슬람 다시 보기』, 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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