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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불성무물(不誠無物)의 철학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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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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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은 인간의 위대한 힘이요, 덕이요, 빛이다.”

안병욱, 『인생, 그 순간에서 영원까지』, 자유문학사, 1987,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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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 인문학박물관과 방명록

 

지극한 정성을 다하면 사람은 물론 하늘도 감동하게 합니다. 이당의 좌우명은 “불성무물”입니다. 이는 동양의 고전 『중용(中庸)』에 나오는 말로서, “성실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정성을 다해야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인생은 요행으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성실이 근본이 되어야만, 모든 것은 그 존재적 가치를 발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실이 근본이 되어야만, 인생도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성실을 달리 말하면 ‘충실(充實)’이라고 합니다. 하루하루를 최선으로 살아가는 것, 알차고 보람 있게 지금 여기에 머무는 것입니다.  


이당의 말대로 “현재는 미래를 위한 수단이 아닙니다. 현재 자체가 목적입니다.” 탁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성실한 마음과 자세로 대해야 합니다. 만남도 참되고. 말도 참됨으로써 성실함을 일상화해야 합니다. 표정도 밝게 하며, 마음과 마음이 맞닿은 화(和)를 이루어야 합니다. 온화하고 인자하며 조화로움 가운데 중용을 지키는 화목(和睦)한 인간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論語』에서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이야기합니다. 사람과 어울림에 있어서 화합하면서도 부화뇌동하지 아니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 내가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여기 내 앞의 사람과 사물입니다. 지금 여기는 나에게 두 번 다시 오지 못할 중요한 시·공간입니다. 이당은 톨스토이의 말을 인용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시간은 현재요,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내가 지금 대하고 있는 사람이요, 제일 중요한 일은 그 사람에게 선(善)을 행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의 사람과 사물에 진정성을 가지고 정성을 다하는 성실함은 내 앞의 모든 존재에 대한 예의이며 선입니다. 


정성을 다하고 성실한 사람에게 고개가 숙어지는 것은 그에게서 번져오는 선과 겸손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참되고 순수하고 독실한 것”이 느껴지기에 그렇습니다. 한때 성실이 집안의 모든 사람을 묶어주는 삶의 철학이자, 그 집안의 지향성인 것처럼 여겨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실’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속고 속이는 일이 난무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일에 무던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시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당은 “성실의 재건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삶의 요소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해야 합니다. 성실함을 존재의 척도로 삼는 사회, 이로써 신뢰와 감동으로 일렁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성실함, 곧 나와 너, 세계와 삶을 속이지 않는 삶으로 공명을 불러일으키고 파장을 일으키는 “성실주의”가 하나의 진리가 되는 세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당은 말합니다. “성실은 우리가 딛고 설 인생의 땅이요, 우리가 밟고 나아갈 길이다.”

안병욱, 『인생, 그 순간에서 영원까지』, 자유문학사, 1987, pp.24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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