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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팥빙수
        팥빙수/송창환 하얀 눈이 쌓인 작은 동산에 소복소복 생각을  담아낸 이야기 눈에 발자국을 남기듯 팥빙수  하나를 두고 우리의 추억을 남긴댜. 그 위에 뿌려두고 얹어둔 삶의 흔적들이 누군가에게 스며들 때 나는 따뜻하게 살아난다. 그래서  무더위라는 시련도 생명을 가꾸는 비옥한 시간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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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7-01
  • 유월의 소낙비
        유월의 소낙비/송창환 적셔 줍니다. 갈한 내 영혼을 식혀줍니다. 타는 내 마음을 제철도 아닌 유월의 소낙비가 엄청납니다. 내 마음에 쏟아지는 빗방울이 하늘이 뚫린 듯이 맞습니다. 실컷 맞고 싶었습니다. 사라져버리라고 말입니다. 아픔도, 슬픔도, 아쉬움도, 그리움도 천둥 속으로 비와 부딪치는 온갖 소리  속으로 무작정 즐깁니다. 초여름 한낮 이 순간만을 생각하며 전설처럼 지난 여름 그때의 소낙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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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24
  • 장맛비
        장맛비/송창환  좀 늦었지만 마음 가득 기다리던 비가 시원하게 대지를 적신다. 매년 한 번 내리는  이 거룩한 축복은 타들어 가던 내 가슴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 놓게 한다. 타는 목마름으로 기다렸던 터라 마음껏 온몸으로 맞이했건만 때로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누가 알리요. 아픔이 기쁨으로 가는 간이역이라는 걸 그래서 이 장맛비로 내 영혼을 맘껏 씻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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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17
  • 불꽃
        불꽃/송창환 태고의 바다를 거닐어 다가온 파도소리 갈매기의 아련한 울음소리에 섞여 철부지 아이들의 해 맑은 웃음소리를 타고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쌓아온 그리움을 잉태한 하늘이 눈시울을 붉히면 노을이 진다. 수평선으로 스며든 젊음의 열정은 이제 고요함의 시간으로 평온을 선물한다. 평화가 깃든 모래벌판 모닥불 속에선 또 하나의 추억이 헐훨 살아 오른다. 툭탁툭탁 터지는 울림은 삶을 사르는 뜨거운 몸부림이오, 소망으로 달아오르는 영혼의 비상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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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13
  • 봄이 온다
        봄이 온다 / 송창환   입춘을 사나흘 앞둔 설날 아침 아득한 옛날 반가운 그 손님이 고향 마을을 찾았다.   세상을 하얀 행복으로 덮는 소망이 너와 나의 마음에 종일토록 하염없이 내린다.   이 정결한 눈꽃이 대지에 스며 생명의 젖줄이 될 때 온갖 꽃들은 제 색과 모양으로 단장하고 꽃눈으로 내릴 거다.   갓 태어난 송아지는 생전 처음 보는 흰 눈이 들려주는 태고 적 이야기에 포근한 내일을 꿈꾸며 어미 품에서 잠이 드는 입춘이 가까운 설날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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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04

실시간 문학 기사

  • 전기밥솥으로 벌어진 소동과 깨달음
    얼마 전 아내는 쓰던 전기밥솥이 잘 열리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고장이 난 것 같으니 새것으로 바꾸고 싶다고 했다. 예전부터 쓰던 것이니 15년이 넘은 것 같다. 그동안 부품도 두어 번 교환하고 안쪽에 든 솥도 바꾸고 하면서 오랫동안 사용했으니 문제가 터질 때도 되었다.   밥솥을 사러 읍내에 있는 전자제품대리점에 갔다. 국내 전기밥솥 분야에서는 두 개 회사가 선두 경쟁을 하고 있다. 두 회사 제품이 전시돼 있긴 했지만, 마음에 맞는 모델이 고루 다 갖추어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중에서 4인용으로 하나를 골라서 샀다.   예전에는 간단하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인공지능 기능까지 더해져 사용법이 무척 복잡했다. 자동세척, 간단 불림, 백미, 현미, 잡곡, 찰진 밥, 구수한 밥, 누룽지 등 메뉴도 많고 작동법도 다양해서 사용설명서를 익히려면 며칠을 읽어야 할 것 같았다.   저녁때가 되어 밥을 지어야 했기에 일단 설명서를 대충 읽어본 다음 쌀을 씻어 넣고 스위치를 눌렸다. 밥이 다 된 것 같아서 열어보니 가운데만 먹을 만하고 가장자리는 두껍게 누룽지가 되어있었다. 우리가 처음 사용하다가 보니 조작을 잘못한 것 같았다. 저녁을 먹은 후 남은 밥은 보온으로 해 두었다.      다음 날 아침 밥상을 차리려고 밥솥을 열어보니,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남아있는 밥이 돌같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부랴부랴 버리려고 내놓았던 옛날 밥솥에다 밥을 지었다. 잘 안 열리는 밥솥 뚜껑을 겨우 열어서 무사히 아침을 먹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뭔가를 제대로 작동시키지 못한 것 같았다. 밥솥을 산 봉담에 있는 대리점보다는 수원에 있는 고객센터에 가서 작동법을 배워 오는 게 나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인터넷으로 고객센터 위치를 알아보고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하고 출발했다.   고객센터사무실 직원에게 밥솥에 들어있는 딱딱한 밥을 보여주면서 작동법을 배우러 왔노라고 설명했다. 직원이 밥솥에 전원을 연결하고 작동시켜보더니 고장이라고 했다. 고장확인서를 써주면서 이것을 산 대리점에 가서 보여주면 교환하거나 환불해 줄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어제 산 새것이 고장이 날 수가 있느냐고 의아해했더니, 직원은 가끔가다 그런 제품이 나온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구매한 대리점에 가서 고장확인서를 보여주었더니, 다른 것으로 바꾸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환불을 원하는지 물었다. 아내는 원하는 모델이 없으니 환불하고 다른 곳에서 사자고 해서 환불을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 인터넷 쇼핑센터에 들어가 보니 다양한 모델이 빼곡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아내는 밥솥에 보온을 작동시켜 조금 오래 두면 전력 소모도 되고 밥맛도 좋지 않으니 3인용으로 하자고 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어서 마음에 드는 모델을 골라 3인용을 주문했더니 이틀 만에 제품이 도착했다. 밥을 해보니 맛있게 지어져 다행스러웠다.   그런데 이번에 밥솥을 바꾸는 경험을 하고 나서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우리 시니어들에겐 복잡한 기능이 장착된 비싼 밥솥보다는 값싸고 기능이 간단한 밥솥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가지 기능이 들어가는 만큼 가격은 비례하여 높아지기 마련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기능이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괜히 신경 쓰다가 보면 머리만 아파질 우려가 크다.   첨단 기능이 복잡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간단하지만 질 높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해야 한다. 밥솥도 마찬가지다. 간단하고 쉬운 작동만으로도 맛있는 밥을 지을 수 있으면 된다. 다른 모든 것에서도 본질적 목적 실현에 충실한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도 크게 필요치도 않은 거추장스러운 것을 치렁치렁하게 매달고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나는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바람직한가?” 이런 질문에 충실했던 것 외에는 크게 남는 것이 없다. 그렇다면 이후의 삶에서도 이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도 삶의 본질에 충실한 소박한 하루를 보람차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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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22
  • 믿음으로 바라보는 오늘과 내일
    ‘코로나19’ 사태로 미사가 중지되기 전 주일 미사 때였다. 영성체를 하러 나가 신부님 앞에서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며 서 있는데 내 나이쯤으로 보이는 형제 한 분이 눈에 띄었다.   성체를 모시고 나서 자리에 들어가다 말고 그대로 서 있는 것이었다. 웬일인가 하고 눈여겨보고 있으니 뒤따라 성체를 모신 여자분을 기다렸다가 손을 잡고 걷는 것을 도와주었다. 아내가 몸이 불편하기에 기다렸던 것이다.     나는 순간 몇 해 뒤의 나와 내 아내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요즘 부쩍 다리에 힘을 잘 쓰지 못하고 있다. 앉았다가 일어나려면 바로 일어서지를 못하고 옆에 의자를 붙들거나 한참을 거실 바닥을 짚고 애를 쓰다가 일어서곤 하여 보기에 매우 안타깝다.   퇴행성관절염 때문에 무릎에 주사를 맞곤 했는데 6개월이 지났지만 신통치 않다. 관절주사를 맞을 때 통증이 심하다면서 맞지 않고 견디어보겠다고 버티는 중이다. 그러다가 가끔 통증이 심해지면 아예 다리를 오므리지도 못해 부축해주어야 겨우 일어난다.   절뚝거리면서 아침을 준비한다고 서두르는 것을 볼 때는 차라리 내가 하는 것이 마음 편할 듯싶다. 서툴지만 내가 밥을 차릴 테니 옆에서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주기만 하라고 하면 한사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자기가 한다고 고집한다.   요즘 아내는 여기저기가 아프다고 고통을 호소한다. 어깨가 쑤신다고 하다가 허리도 아프다고 한다. 다리가 아파서 절뚝거리며 나오지 않으면 머리가 아프거나 어지럽다고 한다. 어쩌다 아침에 일어나 웃으면서 나오면 내 마음도 밝아지고 잠시나마 평온을 찾는다.   나이가 더 들고 다리에 점점 힘이 빠지면 오래지 않아 아내도 저렇게 부축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혼자서는 성당에도 나올 수도 없게 될지도 모른다.   병원 신세만 지지 않는다면 부축해서라도 미사에 참석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픈 데가 없어지기를 기도한다. 기도한다는 것은 간절한 바람이고 응답될 것을 믿는 신앙 행위다.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기에 절대자를 의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인간의 믿음과 의지가 필요하다. 먼저는 생각에 따른 마음가짐이다. 마음과 신체는 분리된 것이 아니다. 사람은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에 부응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셨다.     ‘코로나19’로 지구촌은 엄청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 우리나라는 큰 고비를 넘기고 많은 안정을 찾았다. 생활 거리 두기를 실시하며, 순차적으로나마 초·중·고등학생들의 등교도 결정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있다.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릴 때는 봄도 오지 않을 것 같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꽃은 피었고, 산과 들판은 온통 초록으로 번져가며 생명력이 짙어가고 있다.   의료적으로 한숨 돌리고 보니, 이젠 경제가 문제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하지 않던가. 경제에서도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믿는다.   아내도 비록 지금 힘겨운 나날일지라도 조금씩 나아지리라고 믿는다. 그 전제가 바로 나와 아내의 믿음이고 그에 따른 생각과 마음이며 실천이 아니겠는가.   인류의 역사를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지 않았던가. 언제부터 봄이고 여름이라고 선을 그을 수는 없지만 봄이 지나면 분명히 여름이 온다.   아내가 당장 내일부터 완전히 낫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점점 더 좋아질 것을 믿는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주며 볼 수 없는 것들을 확증해 준다”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이에 대한 믿음이 바로 나의 기도이며, 나와 아내의 밝은 내일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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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07
  • ‘코로나19’로 움츠러든 가슴에 따뜻한 봄이여 오라
      [타임즈코리아] 봄이 왔다. 벚꽃이며 진달래꽃은 한창이고 목련은 이미 꽃잎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 산, 저 산에는 연두색과 분홍색이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려내고 있다.   몇 달 전만 해도 혹독한 추위로 움츠리고 있던 나무들이며 풀들이 푸른 희망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서로 내기라도 하듯이 앞다투어 새잎을 내미느라고 바쁘다.   이런 모습을 응원이라도 하듯이 새들은 수풀 속을 들락거리며 짹짹거린다. 들녘은 나날이 더 짙은 녹색으로 물들고, 논밭에서는 농부들이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여러 가지 농사일로 분주하게 움직인다.       이렇게 봄이 한창인데 사람들의 마음에는 아직도 시린 겨울이 물러서지 않고 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19’의 습격이 우리를 묶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벚꽃의 향연이 쭉 뻗은 도로를 연분홍으로 물들이고, 들판은 푸름을 더하여 가는 완연한 봄인데 사람들 마음속에는 아직 봄이 오지 못한 것이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는데 상상 초월의 피해를 안기고 있는 ‘코로나19’가 닥쳐왔기 때문이다. 유치원과 초·중·고교의 개학은 물론, 대학교도 개강을 못 하고 있다.   문화센터, 복지관도 석 달째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거리에는 문 닫은 상점들이 쉽게 눈에 띈다. 문을 연 상점들도 드나드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보인다.   그래도 계절의 순환에 따라 어김없이 봄이 왔으니, 얼마나 큰 위로인가. 봄마저 오지 않았다면 얼마나 슬펐을까.       올해도 변함없이 찾아와준 봄이 참으로 고맙다. 물리적 거리 두기를 시행하다가 보니, 마음대로 외출하기도 어렵다. 이렇다 보니 마음 놓고 다니는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깊이 절감하게 된다.   ‘코로나19’가 닥친 어려움 속에서도 변함없이 봄이 찾아왔듯이 아무리 위기가 닥쳐와도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희망을 희망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람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진리는 변하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다. 참으로 어려운 형편인데도 우리는 서로 돕고 있다.   의료인들은 망설임 없이 ‘코로나19’가 창궐하던 대구로 달려갔다. 도시락을 보냈고, 마스크를 모아서 관공서에 갖다 놓기도 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내기도 했다.   어려우면 서로 살려고 아우성치며 빼앗으려고 난리가 벌어지기 쉬운데, 한국에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사재기도 없다. 외신에서는 한국의 이런 현상을 보면서 ‘이상한 나라’라고 했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힘이다.       ‘코로나19’에 대한 대처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칭찬을 받고 있다. 우리 국민이 모두 슬기로운 대처로 이루어낸 성과다.   방역과 진단검사에 대해서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본받고 있다. 한국기업에서 생산한 진단키트는 요구하는 나라들의 수요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국격이다. ‘코로나19’는 분명히 우리에게 위기이고 아직도 큰 상처를 안기고 있다. 하지만,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는 이 어려움을 기회로 바꾸어내고 있다.   많이 힘들고 슬픔 또한 매우 크지만, 우리 모두 손을 잡고 다시 한번 더 힘을 내야 한다. 서로 위로하고 도와줌으로써 희망을 창출하며 미래로 나가자는 것이다.   봄은 왔는데, 아직도 시린 마음으로 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삶에 하루속히 따뜻한 봄날이 오고 희망의 꽃이 피어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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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09
  • 깨어서 꽃을 피우자
      흐르는 세월을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코로나19’의 기세도 봄이 오는 길목을 막을 수는 없다. 세월의 흐름은 진리의 불변을 암시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기쁨도 언젠가는 다 지나간다. 그래서 이렇게 말하지 않는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남녘에서부터 들려왔던 꽃 소식이 이젠 전국에서 한창이라고 바뀌었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세월의 흐름에 따라 봄도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느라고 바쁘다. 땅 위에 있는 모든 동·식물도 제 할 일에 충실한 모습이다.   철을 따라 제 할 일에 소홀함이 없어야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사람도 이 진리에 순응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호흡할 때 보람과 행복을 누리게 된다.   앙상하던 나뭇가지들이 잎을 내밀고,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산수유, 목련은 벌써 한창이고 매화, 벚꽃이 앞다투어 피고 있다. 모두 추운 겨울이라는 시련을 이기고 철을 따라 깨어나서 꽃을 피우는 것이다.     ‘코로나19’에 지친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절감하고 있다. 우리는 요즘, 산으로, 들로, 강변으로, 해변으로 가볍게 나섰던 꽃구경이 아무 때나 마음대로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람 사이도 이렇게 됐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만나지 말라고 한다. 만나더라도 악수도 하지 말고, 마스크를 쓴 채로 대화하라는 것이다. 이럴 때 전화로라도 즐겁게 대화도 하고, 서로 격려하며 행복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이 어렵고 답답한 시기를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요즘 나는 꽃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우리 집 베란다에는 겨우내 동백꽃이 피었다가 지금은 다 시들었다. 그 옆에 있던 철쭉꽃은 1월부터 피기 시작하여 반은 졌지만, 지금까지 피어 있다. 그러니까 겨우내 집에서 꽃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난 설날 하루 전에 우리 가족은 서울식물원에 갔었다. 많은 꽃과 나무를 관찰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봉지에 싸여있는 튤립 뿌리를 보았다. 우리는 그 뿌리를 샀다. 상당히 많은 양이었다. 설날 우리는 집에서 카드놀이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아들네가 돌아갈 때 튤립 뿌리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는 얼마가 지났다. 우리 집 화분에 심은 것은 추운 베란다에 두었더니 늦게 자랐고 손녀는 따뜻한 곳에다 화분을 두었기에 꽃이 빨리 피었다. 일찍 핀 꽃은 일찍 지고 말았다. 그런데 우리 집 서늘한 베란다에 둔 튤립은 이제야 두 송이가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빨간 색깔을 띠고 부끄러운 듯 살며시 솟아오르려는 꽃망울이 너무나 아름답다. 그런데 철쭉 화분 옆에서 파도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파는 사람들에게 꽃으로는 인정받지 못한다. 그저 식자재로만 여겨진다. 그런 파인데 여기에서 함께 조화를 이루니 하얀 꽃망울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파가 피운 꽃처럼 때로 우리는 예상치 못한 것에서 인정을 받기도 한다.   이렇게 꽃들을 보고 있노라니,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기쁘다. 나는 꽃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대화도 해보았다. 꽃을 피우려면, 차가운 계절 또는 어두운 땅속이라는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 굳이 시기를 따질 필요도 없다. 일찍 피는 꽃은 일찍 지고, 늦게 피는 꽃은 늦게 진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앞서서 피는 인생도 있지만, 뒤늦게 피는 인생도 있다. 꽃을 피우는 시기도 천차만별이거니와 심지어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는 인생도 많다. 어떤 사람은 꽃은 화려해도 열매가 없는가 하면, 엉뚱한 열매, 못된 열매로 손해를 끼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무슨 꽃이냐, 언제 피느냐보다, 제대로 피어서, 충실한 역할로 주변을 환하게 하며 향기를 퍼뜨리고 좋은 열매를 맺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코로나19’에 대한 능동적이고 신속한 대처로 한국이 주목받고 있다. 심지어 미국도 진단키트의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 선별진료시스템도 모범이 되고 있다. 사재기도 없고, 봉사와 나눔의 물결은 세계인들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고 있다.   6·25동란으로 폐허가 되었던 나라가 뒤늦게 꽃을 피워 아름다운 향기를 퍼뜨리며, 알찬 결실을 거두는 모습이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 이 시기가 지나가면 대한민국은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한 만큼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나눔과 봉사 그리고 사랑의 꽃을 피워 수많은 행복의 결실을 민들레 홀씨처럼 이웃으로, 다른 나라로 날려 보냅시다. 그리고 그 홀씨들이 지구촌 곳곳에서 모두 친구가 되어 손에 손을 잡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날을 기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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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6
  • 은행과 마음의 휴면계좌
    얼마 전 휴대폰에 거래은행에서 보낸 메시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열어보니 새로운 앱이 개발되었는데 다른 은행 계좌의 모든 정보도 한눈에 확인할 수 있으니 필요하면 앱을 다운받아 이용하라는 내용이었다. “그거 괜찮겠는데.” 솔깃한 마음이 들었다.   주로 이용하는 은행을 비롯해 국민연금이 들어오는 은행, 교통카드 때문에 계좌를 개설한 은행 등 여러 은행의 계좌를 한곳에서 볼 수 있으면 편리하지 않겠는가?   나는 즉시 앱을 다운받아서 열어보았다. 열린 장면에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자세한 정보가 펼쳐졌다. 내가 개설해 놓은 여러 은행의 계좌가 모두 나열되어있다. 그런데 생각나지도 않는 여러 은행에 있는 내 휴면계좌들도 눈에 띄었다. 잔고도 나와 있는데 몇천 원도 있고 액수가 큰 것은 이십삼 만원도 있었다. 요즘 경제활동도 못 하는 나에게 생각지도 않은 이십 만원은 큰돈이다.   ▲ 픽사베이     다음날 읍내에 있는 여러 은행에 들러서 휴면계좌를 모두 정리하고, 잔고는 거래은행으로 송금했다. 옛날 가계수표를 이용하던 계좌는 발행은행의 해당지점으로 가야만 정리된다고 했다. 하지만 잔고도 얼마 되지 않아서 포기하기로 했다. 우리 동네에 지점이 없는 은행은 복지관에 가는 날 향남지점에서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편의상 직장이나 거주지 부근에 있는 가까운 은행에 계좌를 개설하여 이용하기 마련이다. 누구나 본의 아니게 몇 십 년간 이 은행, 저 은행으로 옮겨가면서 거래를 하다 보면 까맣게 잊고 있는 휴면계좌가 한두 개는 있을 수 있다.   시니어 여러분, 모두 한번 찾아봅시다. 그리고 단 몇 천 원이라도 잔고가 남아있다면 지금 이용하는 은행 계좌로 옮겨서 이용합시다. 이런 휴면 계좌처럼 우리 마음속에도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벗이나 지인들은 없을까? 한때는 긴요하게 이용했던 계좌들처럼 한창 열심히 만났던 시절에는 다 소중한 사람들이었는데 말이다. 휴면계좌야 정리하면 되지만, 오랜 세월 잊고 지낸 소중했던 사람들이야말로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인생을 풍요롭게 할 것이다. 비록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에서라도 되살려본다면 겨울날 화롯불을 쬐듯 가슴이 따뜻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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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01
  • 첫눈
          첫눈 / 정현석   내가 첫 눈을 떴을 때 첫눈을 보았다.   그 첫눈에 세상이 하얀색인 줄 알았다.   첫눈이 녹을 때 세상의 색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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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19
  • 나의 하프타임
    축구경기에는 하프타임이 있다. 전반전이 끝나면 잠시 쉬며 후반전을 대비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코치가 선수들에게 전반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후반전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 대비해 준다. 이때 코치의 지도에 집중하지 않거나 대책 없이 임하면 후반전은 그야말로 공포의 시간이 되고 말 것이다. 인생도 그런 것 같다. 청년 시절을 보내고 중년을 지내면서 위기를 맞이하게 될 때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하는 인생의 하프타임을 제대로 갖지 않으면 후반 인생이 망가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렇게 인생의 하프타임이 중요한데 우리 시니어들에게는 이 말이 아주 생소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치스럽기까지 하다. 우리의 지난 시절은 일에 파묻혀 헤어나질 못했고, 빡빡한 일정에 잠을 설쳤다. 가정에 대한 책임감과 자녀 양육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몸도 마음도 많이 상했다. 직장일 뿐만 아니라, 각자 맡은 여러 분야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열심히 살기 바빠서 하프타임 따위는 감히 엄두도 못 냈다.   그러면 인생의 하프타임은 언제일까. 인간수명을 100세로 볼 때 40∼50세가 이 시기라면 시니어들에게는 하프타임이 이미 지나가고 없는 것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하프타임은 나이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다. 하프타임은 중년을 넘어서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앞날을 대비하려는 때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100세는 장수에 속하니 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준비되지 못한 장수를 과연 복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장수가 복이 되려면, 신체적으로 건강해야 하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해야 한다. 아울러 정신적으로도 풍요로워야 한다. 그러나 양질의 일자리는 쉽지 않다. 경제의 안정과 건강, 정신적 풍요는 분리적인 요소가 아니다. 이는 삼위일체적인 차원으로 갖추어져야 한다.   과연 어떻게 살아야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는 것인지 고민은 더욱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제가 있으면 반드시 해결책이 있고 답도 있게 마련이다. 그 답을 축구경기에서 찾아보자. 하프타임은 경기력을 혁신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간이다. 지난 11월 15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과 한국의 축구경기에서 전반전에 지던 한국이 후반전에 역전하였다. 이런 결과는 한국이 하프타임에 적절한 대책을 세웠기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시니어들도 하프타임을 지혜롭고 알차게 보내야 한다. 과거를 성찰하며 미래를 꿈꾸며 꼼꼼하게 계획해야 한다. 이 일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코치다. 시니어들에게도 이런 역할의 코치가 필요하다. 내 속사정을 잘 알아주고 진지하게 답해주는 멘토(mentor)가 필요하다.      남들은 적절한 멘토를 만나기가 어렵다지만, 나는 너무 쉽게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다. 우리 시니어들에게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게 해주는 멘토가 있다. 그는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를 창조적인 사고와 혁신적 발상으로 현실화를 돕기 위해 혼신을 다한다. 우리를 새로운 주인공으로 우뚝 서게 하려는 열정과 지혜로 불타오르는 헌신의 대명사 박요섭 지도교수가 바로 그 멘토이기 때문이다.     인문학 시간은 나의 하프타임이다. 나는 이 시간을 통하여 내 인생이 새롭게 바뀌었다. 무의미하게 보내던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방구석의 늙은 존재가 아니라 지금까지 많은 경험을 통해 얻은 경륜과 지혜가 시니어의 자존감이고, 그것들이 진귀한 보석이라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지난 내 삶에서 얻은 경험과 지혜는 내 인생의 도서관을 아름답게 채우고 있다는 사실도 자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묻혀있는 보석이 젊은이와 또 다른 시니어들에게 소중한 가치가 될 수 있다는데 자부심마저 든다.   나는 새로운 시작을 결심하고 그것이 무엇일까를 찾아보았다. 참 인생은 초월적 삶을 통하여 이웃에게 이타적인 사람됨이 아닌가. 그렇다면 부족하지만 나도 누군가의 멘토로 살고자 한다. 이를 이루어 보자. 이 길을 걷는 학습 과정이 험하고 어렵더라도 멈춤 없이 전진해보자.   나는 이런 계획을 실천하려는 마음으로 출발을 모색하고 있다. 그 출발 역시 인문학 강좌에서 해답을 얻고 있다. 인문학 강좌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다가온 글짓기, 내게 너무 생소하고 어려워 꺼려왔던 그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제는 글쓰기가 우연한 만남이라기보다 필연으로 자리 잡았다.   망설였던 글쓰기였지만, 어렵사리 썼던 글로 박 교수님의 칭찬을 받고서 큰 자신감을 얻었다. 박 교수님께서 멋지게 낭독해주시고 아낌없이 칭찬해주셨을 때 나는 최고의 명문대학교에서 수석이라도 한 것 같이 기뻤다. 그때 나는 물론 듣는 모두가 진한 감동에 휩싸였다. 그 시간이 잠시 멋쩍고 수줍어 얼떨떨해졌었지만, 그 후 힘을 얻어 5편이나 더 썼으니 내겐 대단한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역사학자 전우용 박사는 “나이가 들면 저절로 지식과 경륜이 늘고 인격이 높아질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공부하지 않으면 무식이 늘고, 절제하지 않으면 탐욕이 늘고, 성찰하지 않으면 파렴치만 는다. 나이는 그냥 먹지만 인간은 저절로 나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권하고 싶다. “시니어들이여! 하프타임을 마련하고 미래를 계획하라. 언제라도 좋으니 우리 인문학반에 와서 하프타임을 마련함으로 값있는 노후를 준비하라. 왜냐하면, 인문학은 사람답게 사는 것을 고민하게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성공하는 사람은 목적과 비전이 있지만, 실패하는 사람은 현재 발등에 떨어진 불만 보고 목적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이 돌아오지 않듯 잃어버린 인생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경제적 어려움이나 늙어 감을 두려워 말고 오히려 남은 시간을 아껴 쓰자. 마지막 날에 인생을 너무 헛되게 살았다고 탄식하게 되면 얼마나 안타까울까? 자기 관리하기에 따라 노년은 아름다워지기도 하고 슬프고 고달파지기도 한다. 시간을 아끼고 보람 있게 사용하는 것이 지혜로운 삶이다.   나는 결심한다.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기 위해 내게 맞는 하프타임을 계속해 잘 관리해 갈 것이다. 하루는 새벽에, 한 주간에는 인문학 시간을 하프타임으로 삼을 것이다. 그리하여 육체의 남은 때를 맑은 영혼과 함께 당당한 시니어로 행복하게 살아가리라. 이렇게 결심한 오늘이 내 남은 인생의 첫날이고 덤 인생의 시작이니 마음껏 자축하며 오늘을 힘차게 출발하련다. 최병우 취재위원
    • 한국문화
    • 문학
    2016-12-20
  • ‘맘’ 자락 어딘가에 영혼이 멈춰서면
      마음은 하늘의 숨을 머금은 듯 그 청아함과 숭고함을 간직하고 있다.   마음은 자연을 닮은 순수 형상일까? 함석헌의 시어가 가리키는 마음은 자연 본성이다. 반복적인 운율을 따라 자연의 시어들을 구사하는 작가의 무의식은 강박적으로 자연을 지향한다. 마지막 연의 “차라리”라는 어투가 갖는 함의는 본성을 아예 탄생의 본래적 순수성으로 가져간다. 그런데 왜 그는 ‘마음’을 ‘맘’이라 했을까? 그것은 단순 축약어가 아닌 말의 아낌이고, 마음을 다 드러내지 않으려는 작가의 감성적 과잉의 절제나 다름이 없다. 마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 자연을 닮은 순수함이 달아나기라도 할 듯이 꼭꼭 감추어둔 ‘맘’은 살포시 그 언저리만 내보인다.   ▲ 자연이 마음의 외면이라면, 마음은 자연을 닮은 순수한 내면이다.     <맘>   맘은 꽃 골짜기 피는 난 썩어진 흙을 먹고 자라 맑은 향을 토해   맘은 시내 흐느적이는 바람에 부서지는 냇물 환란이 흔들면 흔들수록 웃음으로 노래해   맘은 구름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한 때 한 곳 못 쉬건만 늘 평온한 자유를 얻어   맘은 봉 구름으로 눈물 닦는 빼어난 바위 늘 이기건만 늘 부족한 듯 언제나 애타는 얼굴을 해   맘은 호수 고요한 산 속에 잠자는 가슴 새벽 안개 보드라운 속에 헤아릴 수 없는 환상을 건너   맘은 별 은하 건너 반짝이는 빛 한없이 먼 얼굴을 하면서 또 한없이 은근한 속삭임을 주어   맘은 바람 오고감 볼 수 없는 하늘 숨 닿는 대로 만물을 붙잡아 억만 가락 청의 소리를 내   맘은 씨알 꽃이 떨어져 여무는 씨의 여무진 알 모든 자람의 끝이면서 또 온갖 병상의 어머니   맘은 차라리 처녀 수줍으면서 당돌하면서 죽도록 지키면서 아낌없이 바치자면서 누구를 기다려 행복 속에 눈물을 지어   마음은 가만히 있어도 묻어나는 향기와 같아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방으로 퍼지며, 또한 소리처럼 온갖 울림으로 타인에게 말을 건넨다. 마음은 한곳에 머물지 않고 자유로운 얼굴이 되기를 원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은 고요한 침묵으로 일관하기도 하지만, 한 줄기 빛으로 자신의 자리를 드러내준다.   마음은 하늘의 숨을 머금은 듯 그 청아함과 숭고함을 간직하고 있다. 그렇게 될 때 마음은 하나의 잉태 가능성을 내포한 씨-알이 되어 모든 것들을 살려내는 힘이 될 것이다. 그것은 “차라리” 희생을 간직한 내적 깊이요, 타자에게 마음의 행복을 주려는 자기 수줍음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마음은 환상이라기보다 “차라리” 진실이자 사실이고 싶은 게다. 그래야 마음은 숨은 듯 숨지 않은 듯 자기의 본래성을 외면하지 않고 솔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들여다보지 않고도 어딘가에 마음이 있을 것이라고 갖게 되는 신념은 신앙의 모습과도 닮아 있다. 순수에 대한 열정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인간의 마음은 적어도 오염되거나 탁해져서는 안 된다는 종교적 인간학이 작가의 시선과 더불어 보편적인 인간의 마음을 이상화한다.   마음의 자리는 어디에도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고 언제든 드러나니 자연과 닮아 있다. 자연이 마음의 외면이라면, 마음은 자연을 닮은 순수한 내면이다. 마음을 형상화하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이미지를 닮은 사람이 가진 마음은 상징과 은유를 통해서라야 읽을 수도 있고 향기를 맡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함석헌이 그린 마음 시어가 오늘 우리 가슴에도 ‘꽃, 시내, 구름, 봉, 호수, 별, 바람, 씨앗’으로 그려져 맑은 향을 묻어내고, 웃음으로 노래하며, 한없이 은근한 속삭임을 주기도 하는 어머니가 되어주었으면…….  
    • 한국문화
    • 문학
    201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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