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30(토)

선비의 미학을 아름답게 이어가는 난(蘭)의 작가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13.07.02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난(蘭)에 대한 창작과 연구를 통해 얻게 되는 새로운 발견과 영감은 저를 더욱더 젊어지게 하는 제 생의 아름다운 보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돈독한 우정을 이야기 할 때 금란지교(金蘭之交)라는 말을 한다. 진정한 친구 사이에서 나타나는 정의(情誼)는 단단한 쇠붙이도 가를 수도 있고, 서로를 생각하여 나누는 정은 난초의 향기와도 같다는 말이다.

금란지교(金蘭之交)는 역경(易經)의 “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이인동심 기리단금 동심지언 기취여난, 두 사람이 마음을 같이 하면 그 번뜩이는 예리함이 쇠를 자르고, 같은 마음을 품고 하는 말은 향기로움이 난초와 같다)”이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택견이라는 우리의 전통무예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부드러운 것은 곧, 그만큼 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난(蘭)은 선비정신을 의미한다. 외연에서의 이미지도 그렇거니와 난(蘭)이 지니는 깨끗하고 단아한 속성 때문일 것이다. 가람 이병기 선생의 ‘난초’라는 작품을 보아도 난(蘭)의 이런 속성이 잘 나타나 있다.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 한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하여
정(淨)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미진(微塵)도 가까이 않고 우로(雨露) 받아 사느니라.


▲ 장윤희 작가의 작품


범혜 장윤희 작가는 30여년을 난(蘭)에만 몰두하였다. 그는 30여년을 난(蘭)과 함께 지냈지만, 날마다 맞이하는 하루하루 난(蘭)을 새롭게 보아왔다. 난(蘭)에 대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삶이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삶을 살았다. 난(蘭)을 향한 그의 열정은 법고창신(法古創新)으로 불타올랐다. 그의 난(蘭)에는 수묵과 채색이 어우러진다. 난(蘭)을 향한 작가의 사랑과 깊은 사색이 새로운 길을 열게 한 것이다.

프랑스의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Honore de Balzac)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가 변하면 세상의 모든 것도 변한다”고 하였다. 누군가의 변화를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의  변화를 통해 전통을 만들어 온 장윤희 작가의 모습도 난(蘭)을 닮아 있다. 장윤희 작가의 작품에는 난(蘭)에 대한 노래가 들어 있고, 난(蘭)과의 이야기가 스며있다.

난(蘭)이 꽃을 피우는 순간에는 그의 작품에도 꽃이 피었다. 꽃이 떨어지면 난(蘭)과의 지난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 보람으로 영글었다. 때론 난(蘭)에게 손을 내밀고, 때론 난(蘭)이 남몰래 가져다주는 향기에 위로를 받는다. 이런 소중한 시간들이 마음과 손끝에 기억을 만들며 21세기 선비의 모습을 한 난(蘭)으로 탄생한다.

장벽을 탓할 시간 담쟁이들은 손에 손을 잡고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고 시인 안도현은 노래한다. 한계를 탓하기보다는 한 걸음씩 한계의 벽을 보람으로 올라온 장윤희 작가, 그를 만나는 즐거움에 시간이라는 개념마저도 사라진 듯하다.


▲ 대한민국기로미술협회 장윤희 작가

박요섭 - 어떤 계기로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되셨는지요?

장윤희 - 제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6.25가 발발했습니다. 그 해, 7월 1차로 학도병들이  자원하여 낙동강전투에 참가했고, 저는 2차로 8월에 입대를 하였습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이 수복되고, 북진을 계속했습니다. 분단의 상처를 잠재우지 못하고 1.4후퇴를 거쳐야 했습니다. 그 후 2사단에 배치되어, 중부전선 철의 삼각지대에서 전쟁의 참혹한 현장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1952년 11월로 기억됩니다. 저격병능선전투에서는 30여 차례나 뺏고, 뺏기는 치열한 전투가 계속 되었습니다. 첫날에만도 수백여 명의 전우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마저도 지옥 같은 참혹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주인공이었던 것입니다.

1953년 7월 27일 마침내 휴전이 되었고, 저는 백마고지 정상에서 그 날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72시간에 걸친 전장정리를 마치고 2.5마일을 물러나 철원 남대천 부근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하였습니다. 그리고 한 해가 지난 1954년 무더위가 한창이던 8월 10일, 제대명령을 받았습니다.

학도병으로 입대한지 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전쟁의 상흔이었습니다. 살아남기는 했지만 정서적인 충격으로 정신적인 치유가 절실한 상태였습니다. 소위 말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Post-Traumatic Stress Disorder)였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개념조차 생소했고, 이런 사람들을 돌봄 아무런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생계를 이어야 했기에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가운데 서울에서 예향의 도시 전주로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부터 전쟁에 대한 외상 후 스트레스도 극복하고 정신수양과 여가선용도 겸할 수 있는 서예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5년간은 서예와 사군자를 병행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제 마음에 가장 편안하게 와 닿는 것이 난초였습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난초를 중점적으로 치게 되었습니다.


▲ 장윤희 작가의 작품


박요섭 - 작품 활동에 대한 보람과 소회에 대해서 한 말씀해주세요.

장윤희 - 저는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동안은 계속 즐거운 마음으로 난을 칠 것입니다. 난을 칠 때에는 모든 생각을 뒤로 하고, 호흡까지도 멈추게 됩니다. 정신적 수련이 별도로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작품에 몰입하는 모든 과정이 아무나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고도의 정신적 수련입니다.

정서적 경험에서도 넘치는 즐거움을 얻게 됩니다. 춘난은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 같다고 비유합니다. 한난은 풍부한 학식과 덕망을 지닌 올곧은 선비와 같다고 합니다. 이렇다보니 난(蘭)과 함께하는 시간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 짐작이 가실 것입니다. 제게 있어 난(蘭)은 행복이고 보람입니다. 수많은 난(蘭)을 쳤지만, 새로운 작품을 할 때면 그 때마다 항상 새로운 기쁨이 솟아납니다.

박요섭 -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장윤희 - 추사 김정희선생의 ‘불기심난도’는 삼전법을 많이 사용하여 그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필법에서는 문자향법이라는 특징이 나타납니다. ‘불기심난도’에서 아들 상우에게 준 화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난초를 그릴 때에는 마땅히 자기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데서 시작하여야 하며, 잎 하나 꽃술 하나라도 마음속으로 반성하여 부끄러움이 없게 한 연후에야 남에게 보여야 한다. 모든 사람의 눈이 주시하고, 모든 사람의 손이 다 지적하고 있으니, 이 또한 두렵지 아니한가?”

참으로 반듯하고 심오한 영감으로 쓴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후세대들에게 보감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난초를 주로 하는 저로서는 항상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작품을 할 때마다 제 마음에 비추어 보곤 합니다. 특히 ‘불이선도’는 예서의 필법으로 그린 유일한 것이라서 더욱더 귀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난(蘭)을 이야기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대원군입니다. 그는 바위를 깨고 나오는 난을 친다고 하여 석파라는 호를 갖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경지를 일컬어 신기를 얻었으니 법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대원군 난에는 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제 작품에 대한 소회라기보다는 이 두 거장의 작품을 통해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이루어 가려는 것이 작품에 대한 저의 자세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장윤희 작가의 작품


박요섭 - 작품에 대한 본인만의 스타일이라면 어떤 것일까요?

장윤희 - 보편적으로 난이라 함은 먹을 사용한 묵난을 일컫는 것입니다. 누구나 이런 방법을 사용해 왔습니다. 난의 묘법으로 교차하는 잎들 사이에 소밀, 장단, 노소, 비수, 고저, 건습의 조화로움을 두고, 각종의 형태를 어울리게 배열하면 난초를 그림으로써 신기를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대원군은 당시까지의 난초 그리기의 방법을 뛰어넘은 창작활동을 했습니다. 창의적인 안목과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저도 대원군의 난법을 연구하고 응용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묵과 색의 조화를 만들어냈습니다. 꽃술에 색깔을 넣는 방법은 저만의 특징이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여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난의 세계를 펼쳐나갈 것입니다. 앞으로도 더욱더 정진하여 나날이 새로운 창작의 기쁨을 경험하며, 필요한 사람들과도 공유하고 싶습니다. 연구와 창작적 실험을 위하여 거장들의 작품은 물론, 관련 저널, 전문서적 등을 살피는 일에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이런 활동은 왕성한 의욕을 불러일으켜 줍니다. 난(蘭)에 대한 창작과 연구를 통해 얻게 되는 새로운 발견과 영감은 저를 더욱더 젊어지게 하는 제 생의 아름다운 보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박요섭 - 작가생활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장윤희 -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일은 매우 소중한 것입니다. 일은 곧 복이요, 즐거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일 가운데에서도 작품을 하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실감하면서 작품연구에 정진하고 있습니다.

책상 위에 화선지를 펼치고, 붓에 먹을 듬뿍 묻혀 숨을 멈추고, 난을 칠 때에는 모든 상념이 묵 속에 스며들고 힘차게 뻗치는 난의 모습만 보이게 됩니다. 저는 이 시간을 한마디로 ‘환희’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이 순간은 난의 청아하면서도 요염한 자태에서 내뿜는 향기에 취하고,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습니다. 작품을 하는 저에게 있어 이 순간은 즐거움의 절정에 이르는 시간입니다.

박요섭 - 소속 단체들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장윤희 - (사)대한민국기로미술협회는 윤부남 이사장을 중심으로 상임임원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결속으로 급속적인 발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어느 예술단체보다도 발전적인 토대를 구축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는 부회장과 운영위원을 맡고 있으나 활동이 부족하여 송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협회에 대한 애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늘 발전을 소망하고 있습니다. 미력하나마 협회의 발전을 위해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의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


▲ 타임즈코리아 신문사에 작품을 기증하는 장윤희 작가


박요섭 - 삶의 철학이나 좌우명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장윤희 - 저는 정직하게 사는 것을 삶의 철학이자, 좌우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정직을 말하기는 쉽지만, 실천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생각이 정직하면 행동은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정직에 대한 실천은 마음의 평온을 줍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때로는 자신도 모르게 실수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늘 자기반성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강물의 자정작용과도 같은 것입니다. 건강한 강물이 생명력을 제공할 수 있듯이, 정직은 건강한 삶의 원동력이 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우유부단하지 않으며 정직하게 최선을 다하여 살고자 합니다.

박요섭 - 버추얼 갤러리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장윤희 - 작가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은 전시회를 통하여 작품을 개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여러 사람들에게 작품을 보여주고 비평도 받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버추얼갤러리’는 시청각적 유익을 통해서 보다 많은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과 작가들의 다양한 활동을 신속하고 항시적으로 경험하게 함으로써 예술적 이해와 배움에 있어 많은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라는 말처럼 많은 사람들이 쉽게 작품을 접하게 한다는 것은 여러모로 효율적이고 유익한 발상입니다.

과학기술적 발달로 인해 얻게 되는 현대문명의 유익을 각자의 발전기회로 삼을 수 있는 좋은 장이라고도 생각됩니다. 무엇보다도 예술의 저변확대와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버추얼 갤러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의 창작 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매우 기쁘고 보람되게 생각합니다. 제가 하는 역할에 자부심을 가지고 역동적으로 모두의 유익과 기쁨의 창출에 기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 대한민국기로미술협회 임원들과 함께 기념사진


박요섭 - 타임즈코리아 버추얼갤러리 관람자들에게 한 말씀해주시지요.

장윤희 - 타임즈코리아를 통해 만나게 된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타임즈코리아를 통해 계속하여 소중한 만남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창작이나 공부나 모든 것들이 언제나 같을 수는 없습니다. 시대와 장소에 따라 늘 변화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작품이라는 것도 늘 같을 수가 없습니다. 백 사람에게 작품을 배운다고 해도 그 작품들은 다 다르게 나옵니다. 창작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작품에서 자기의 특성을 살리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입니다. 집념을 가지고 열심히 하면 자신만의 독특한 방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모든 것이 다 그럴 것입니다. 세상에는 70억이 넘는 인구가 산다지만 지문이 같은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 각자의 삶이 소중하다는 것은 이런 맥락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들 모두 자신의 특성을 다른 사람들과 조화하여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며 살아가는 복 된 삶이되시길 바랍니다. 



장윤희 작가 버추얼갤러리 바로가기





타임즈코리아 톡톡뉴스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태그

BEST 뉴스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선비의 미학을 아름답게 이어가는 난(蘭)의 작가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

Warning: Unknown: write failed: Disk quota exceeded (122) in Unknown on line 0

Warning: Unknown: Failed to write session data (files). Please verify that the current setting of session.save_path is correct (/home/danbi/public_html/data/session) in Unknown on line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