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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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규 한림대학교 교수

나의 부친 이당 안병욱의 평전을 출판하며  


나의 아버지는 이당 안병욱 선생이다. 아버지는 1920년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났고 2013년 10월 10일 강원도 양구 철학의 집에 묻히셨다. 아버지는 철학자다. 일생동안 50여권의 책을 집필하였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중 강연과 도산 아카데미운동을 하면서 수많은 독자, 학생, 시민들과 함께 하셨다. 이당은 많은 사람들에게 저자, 강연자, 서예가, 주례자, 사상가, 운동가, 선생이며 공인이었지만 나에게는 평범하고 따뜻한 아버지였다.  


우리들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아버지를 갖게 된다. 나의 인생 56년을 함께한 아버지와 나는 정말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부자지간이지만 우리의 대화는 철학, 종교, 정치, 여행, 영화, 시사, 그리고 일상적인 것들을 포함하는 소위 인생사전 같은 대화였다. 아버님의 마지막 50번째의 책은 제목을 ‘인생사전’이라 정했다. 이당이 쓴 50권의 책의 서문은 아버지 스스로가 쓰셨는데 마지막 2권은 다른 사람들이 썼다. 49번째 책 ‘철학의 즐거움’은 아버지가 병중에 계셔서 아들인 내가 썼다. 나는 아들이지만 아버지의 글을 흉내 낼 정도로 아버지를 잘 알고 많이 닮아 있었다. 이당 사후에 출간이 된 50번째의 책 ‘인생사전’은 아버지를 사랑하는 지인인 손봉호 교수 이동원 목사, 이당의 제자 숭실대학교 철학과 김선욱 교수, 그리고 평생 벗이었던 철학자 김형석 교수가 쓰게 되었다.  


이당을 기념하는 안병욱평전이 세상에 출간된다는 사실은 가족들에게는 큰 보람과 행복이고 이당을 기억하는 수 많은 사람들에게는 즐거움과 기쁨이 될 것이다. 평전의 저자인 김대식 박사는 함석헌 사상의 특강의 강사로 2년 전 춘천에 오게 되어 나와 처음 만나면서 인연을 쌓게 되었다. 이당의 땀과 혼이 남아있는 숭실대학교 철학과에서 철학박사를 그리고 카톨릭대학교의 종교학 박사도 소유하고 있는 김대식 박사는 이당평전의 적임자라고 할 수 있다. 이당의 문체는 무겁고 진지하다. 김대식 박사는 이당처럼 여러 책들을 저술하였고 문체 또한 이당처럼 무게감이 있어서 이당의 사상과 삶을 녹여내는 평전작업의 어려움을 잘 소화하였다. 완성도 높은 평전을 마무리하게 된 것을 다시 한번 지면을 통해 감사를 드린다.  


양구에 가면 한국 철학의 두 아이콘 안병욱/김형석을 기념하는 철학의 집이 있다. 먼저 떠난 안병욱의 돌판 묘에는 그의 글씨체인 이당체(물흐르듯한 자유로움의 본인이 명명한 글씨체) 여섯 글자가 돌판에 새겨져 있다. 청정심 청무성(淸淨心, 聽無聲). ‘사람은 마음이 깨끗하고 맑아야 하며, 그러면 무성(소리없음)을 들을 수 있어. 진리의 소리는 원래 소리가 안 나거든. 자유/사랑/진리/신의 말씀 등은 원래 소리가 없어’ 아버지의 돌판 묘를 볼 때마다 그가 나에게 들려준 아버지의 음성이 기억난다.   


이당은 성실의 철학자이다. 이당은 강연에서 “우리는 성실의 모자를 쓰고 겸손의 허리띠를 띠고 근면의 신을 신고 나의 길을 가야합니다‘라고 갈파하였고 그의 자작시 ’나의 인생시‘에서 ”나는 인생을 사랑합니다. 내가 정성을 기울여 추구할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외쳤다. 강원도 양구 철학의 집에가면 이당 안병욱이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있을 것이다. 철학의 집에는 안병욱의 어록과 붓글씨 그리고 책과 업적들이 청무성(聽無聲)의 역할을 하고 있다. 77세 아버님의 희수 생신 때 평상시 안 우시던 아버지는 우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저의 소원은 통일이 되어서 고향땅 평안남도 용강에서 돌아가신 아버님/어머님의 무덤에서 목 놓아 울고 싶은 것이다.’ 불행하게도 그 소원은 안 이루어지셨지만 다행인 것은 북녘 고향땅과 아주 가까운 휴전선 근처 강원도 양구에 아버지가 잠들어 계시다는 사실이다.  


노 철학자 아버지에게 돌아가시기 얼마 전 나는 ‘아버지, 철학이 도대체 뭐예요?’ 라고 순진한 질문을 하였는데 그때 이당은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다’라고 무거운 철학적 대답을 하였다. 나는 그것이 그 때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를 못하였는데, 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면서야 그 심오한 뜻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누구나 죽어야 되는 인간의 삶속에서 철학은 바로 죽음의 연습이다’ 이것이 아들에게 가르친 마지막 아버지 이당의 인생철학 청무성강의였다.  


철학자 안병욱의 삶과 사상과 일생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이당 안병욱평전’이 철학이 무엇이고, 성실이 무엇이며, 과연 인생이 무엇인지를 찾는 독자들에게 또 하나의 청무성강의가 되기를 바라면서 아버지의 묘 앞에 이 평전을 바칩니다.

 

막내 아들 안동규 (한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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